오늘 인턴이 끝나고 덕수궁 대한문 앞 세월호 희생자 추모 촛불집회에 다녀왔다. 주말에 가고 싶었지만, 주말에는 서울에 나올 일이 없다. 시청 앞 분향소는 한산했다. 노란 리본들을 보아도 얼마 전만큼 막 슬프지는 않았다. 그런데 촛불집회가 막상 시작되자, 주최측에서 틀어주는 동영상을 볼 수 밖에 없었고 결국 엉엉 울어버렸다. 페북에, 아이들이 배가 완전히 침몰하기 전에 찍은 동영상 링크가 올라왔었는데, 그걸 보면 너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슬플까봐 피해다녔었다. 그런데 집회에 가서 보고야 말았다.


완전한 동영상은 아니었고 정지된 화면과 소리만 들려줬다. '선생님한테 카톡해봐~' '우리 진짜 죽는 거 아니야?ㅋㅋ' '구명조끼 꺼내 봐. OO이가 구명조끼가 없어.' '내 꺼 입어' '수학여행 왔는데 큰일났다' 하는 재잘거리는 목소리들 사이에 고3인 내동생의 목소리가 들리는 듯했고, 나도 모르게 그 아이들이 모두 내 동생 같다는 생각에 너무나 가슴이 아팠다. 그 와중에도 선생님을 걱정하고, 친구에게 구명조끼를 대신 내어주고, 엄마, 아빠, 동생을 보고싶어했던, 겨우 고2짜리 아이들...


사회 문제를 비판할 때 이렇게 감정을 이입한 적이 있었을까? 온전히 무고한 아이들이었기에, 온전히 어른들이 책임져야할 존재였기에, 시민들은 아이들의 죽음이 남기고 간 부채의식에서 영원히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. 엄마가 며칠 전 '얘를 키워봐야 진정한 어른이다'라고 한 것, 초등학교 3학년인데 아직도 이모 없이 30분을 못 넘기는 사촌동생에 대해 이모에게 '강아지를 길러봐. 자기가 온전히 책임져야 하는 존재가 생기면 의젓해지지 않겠어?'라고 조언한 것이 떠올랐다. 시민의식을 가장 통렬하게 지피는 것은, 결국 우리의 손에 소중한 생명이 고스란히 맡겨졌을 때의 그 책임감이 아닐까? 내 한몸 간수하는 것보다도, 너무나 연약하고 순수하여 지켜주고 싶고 지켜주어야만 하는 존재가 있을 때, 그걸 깨달았을 때 비로소 깨어있는 시민이 되는 것이 아닐까?
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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